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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분스페셜] 한글날 만화 분석해보기

언어

by ∫2tdt=t²+c 2012. 10.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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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만든 한글사랑 만화. 읽어보면 검토할 부분이 많을거 같아서.



1. '버카충'과 같은 줄임말을 쓰는것이 한글 파괴일까?

* 확실히 한글 파괴는 아닙니다. 줄임말을 쓴다고 한글 문자가 파괴되는것은 아니니깐. 만약에 한글 파괴라는 표현이 넓게 쓰여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언어표현을 사용하는것'을 의미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겠지요.


* 그런데 또, 줄임말을 쓰는것이 꼭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련, 문대생, 과기부, 선관위, 연대, 계좌, 찌끼.... 준말을 일상생활에서 찾아보는건 힘든일이 아니죠. 인간은 언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긴 단어나 표현은 줄여말하고자 합니다. 이는 모든 언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문제삼을것은 없습니다. 이 만화에서 '버카충'이 잘못된 말이라고 지적한 것은 한국어 언중 중 일부만 알아듣는 말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어서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전국민 회의를 소집해서 준말을 이해하는지 확인해서 모두가 이해한다고 결론날 경우에만 옳은 어휘로 인정할 것입니까?


* 새로운 줄임말이 도입될때는 언제든지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어휘가 퍼지면서 여러 언중들이 납득하고, 사용하게 되면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어휘는 오래지 않아 사라지게 되는거지요. 제가 경기도 수원시를 '경수'라고 줄여부르겠다고 그래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동의 안 한다면 '경수'라는 말을 쓰이지도 못한채 사라질 겁니다. '버카충'이라는 말이 특정 언중들에게서 사용된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에게는 이 말이 그런 동의를 거치고 이해가 된다는 것인데, 이를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언중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2. 정말 다대기는 일본어에서 왔을까?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을 쓰면 안되는 것일까?

* 국립국어원에서는 다대기(다데기, 다진 양념)라는 표현이 たたき에서 온것으로 보고, 순화하여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근데 たたき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육이나 닭고기 등을) 다져서 만듦, 혹은 그 요리 라는 뜻이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가설이 숨어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다대기는 'たたき'와 발음과 뜻이 유사하므로 연관이 있을 것이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같은 논리가 한국어에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 다대기는 '다지기'와 발음과 뜻이 유사하므로 연관이 있을 것이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즉, たたき라는 표현이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다진 양념'을 뜻하는 개념으로 쓰였다는 것이 실증되기 전까지는 다대기가 たたき에서 왔는지는 모르는 것이죠. 뭐 가능성은 있는 거니깐...ㅋ


* 그런데 일본어에서 유래한 표현들은 왜 쓰면 안되는 것일까요? 일본어에서 유래한 표현들은 우리말 이곳저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어 중 많은 비율이 일본에서 만들어져 건너온 한자어들이죠. (납득하다, 상담, 풍습, 재난, 비용, 결혼 등등 자세한 목록은 여기!) 일본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며 한자어로 번역한 여러 근대 용어들을 우리는 그대로 받아서 쓰고 있지요. 이런 표현들은 왜 고치지 않을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미 너무 당연하게 쓰고 있으니, 어떤게 일본에서 왔고, 어떤게 원래 쓰던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것이지요. 언중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표현을 쓰고자 하지, 생소한 표현은 잘 쓰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국심이 투철한 민족주의자라고 해도 일본에서 온 '결혼'이라는 말 대신 예전부터 쓰이던 '혼인'이라는 말을 쓰라고 하면, 아마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버리면, '결혼'이 일본어에서 왔는지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아 물론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잘 남는다면 그렇지 않겠지만ㅋ) 이런 일이 4천여년의 한국어 역사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인접한 국가의 언어끼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대적인 국가 개념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생겨나기 이전엔 더 자유로이 영향을 주고 받았을 수도 있지요. 어쩌면 우리가 고유어로 알고 있는 수많은 단어들이 과거에 외래에서 유입되었는데, 외래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일수도 있습니다. 



3. "잘못된 한글표현 중에는 일본식이 많지." 라는 세종대왕의 말...

* 세종대왕 마저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 못하면 아니되옵니다. 후우 하략.




4. '했었다'는 영어에서 온 대과거 표현인가? 그래서 쓰면 안되는가?

* 일단 '-었-'을 두 번 사용하는건 잘못된 표현이라는게 국립국어원의 입장입니다. 왜 잘못되었느냐하면 선어말어미 '-었-'은 한 번만 쓰일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음 문장을 볼까요


ㄱ. 아, 나도 그거 하지.

ㄴ. 아, 나도 그거 했지.

ㄷ. 아, 나도 그거 했었지.


ㄱ. 그는 중국에 간다.

ㄴ. 그는 중국에 갔다.

ㄷ. 그는 중국에 갔었다.


ㄱ-ㄴ의 의미차이는 확실하죠ㅋ. ㄴ-ㄷ도 의미 차이가 있을까요? 확실한건 같다고 말할수는 없겠습니다.

한국어 시제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치열합니다. 한국어에는 시제(tense)가 없고 상(aspect)만 있다는 주장(허웅)에서부터 현재와 과거만 있다는 주장, 과거-현재-미래를 다 인정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었었-'이 영어의 대과거 시제를 나타내는지(그리고 그 용법이 영어의 대과거와 일치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아직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론 '-었었-'이라는 표현은 근래에 외국어의 영향을 받고 생긴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한국어 내에서 '-었-'과는 다른 의미를 나타내고 있고, 언중들이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었-'은 한번만 올 수 있다는 규칙이 바뀌어야하는것은 아닐까요?



5. 국립국어원은 꼭 한 발 늦더라...?

* '업사이클'은 '새활용'으로, '스펙'은 '공인자격'으로 순화해서 사용합시다~~~!

라고 말해도 아마 잘 안 쓰일것입니다. 그건 '업사이클', '스펙'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애국심이 부족하고, 매국노여서 그런것이 아니라, 이미 저 단어들이 받아들여져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한국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테스트해보겠습니다. 다음 단어의 뜻을 말해보세요.

정답은 괄호 안에 흰 글씨로 써져있습니다.

-무른모 (Software)

-굳은모 (Hardware)



정답을 모르시는 당신은 한국어를 사랑하지 않는 매국노시군요.... 라고 누구도 말할수 없습니다. 이미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라는 표현이 널리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순화용어를 만들어봤자 고개만 갸우뚱하게 만들뿐 대다수 언중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항상 외래어표현이 들어온지 한참 지난 뒤에야 순화어를 만들어서 내놓기 때문이지요. 학계의 전문용어 중 많은 수도 한국어 번역어가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순화 문제를 애국심에 결부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사고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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