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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소리를 ㆄ로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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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tdt=t²+c 2012. 11. 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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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에 새로운 문자를 추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처: http://www.hangeul.or.kr/board/view.php?id=bg01&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504)


위 주장은 하나의 극단적인 예를 가져온 것이고, 서울아산병원 울산의대 이인철 교수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학자들과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외국어 발음 표기를 위해서 새로운 글자를 추가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f] 소리를 위한 ㆄ 글자를 추가하자는 것인데, (이는 옛한글을 부활시켜서 사용하자는 것.) 과연 새로운 문자를 추가하는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고민해봅시다.


1. 외래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커피'는 어떻게 읽어야할까요? 표준 발음법에 따르면 [커피]라고 발음하면 됩니다. [khʌphi] 정도가 되려나요. 그런데 이렇게 발음하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봅니다. 그래서 ph대신에 f로 발음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커피'를 [khʌ.fi]라고 발음하겠지요. 프랑스를 발음할 때도 '프랑스'라 쓰고서는 [fɯ.raƞ.sɯ]라고 f 발음을 살려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나운서들인데,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하는 아나운서들은 한국어에 없는 f발음 마저 정확하게 챙겨서 발음하고 있는거지요. (무엇보다 표준 발음법을 지켜야할 아나운서들이 이런 파행을...) 근데 또 재미있는건 아이폰4를 발음할때를 보면, 폰은 [pon]로 4는 'four'로 발음한다는 것이지요. 폰과 4는 둘다 f발음으로 시작하는데 말이지요...


원음을 살려서 발음하는 것은 좋은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외래어란 외국어에서 유입되어 이미 한국어화된 단어들을 가리킵니다. 한국어에 들어와버린 외래어는 한국어 화자가 발음하기 쉽도록 소리값이 한국어에 맞춰서 변하게 됩니다. '텔레비젼', '티비'를 말할때 누구도 ㅂ을 v로 신경써서 발음하지 않습니다. 굳이 원음을 살려서 발음하겠다고 하면 그건 외국어를 하는것이지 한국어를 하는게 아니게 되는거지요.


2. 왜 [f] 만 추가하면 충분한가?


아나운서들은 f발음은 꼭꼭 챙겨서 하지만, [r]이나 기타 영어에 존재하는 발음들을 딱히 신경쓰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어에 있는 권설음 역시 신경쓰지 않죠. 세계의 수많은 언어에 있는 다양한 발음을 정확하게 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외래어를 정확하게 적기 위해서 [f]에 해당하는 문자를 추가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커피'에서 ㅍ만 [f]로 발음하면 영어발음과 같아진다고 생각하나봅니다.


'커피'를 [khʌ.fi]라고 발음해봤자 역시 원음을 살리지 못합니다. 실제 발음은 [ka.fi]에 더 가까운걸요. 한국인들은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분못하기 때문에 기식성으로 이를 구별하려고 시도하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원음과 달라지는것이지요. 만약 문자를 추가할거면 f, v, r, sh 등 말고도 무성음과 유성음을 구분할수있는 문자들을 추가해야할 겁니다.


그런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프랑스를 [fɯ.raƞ.sɯ]로 발음하는 사람들은 원음 따라갈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한국어는 음절핵 하나에 자음이 최대 2개까지만 붙을수 있는 제한이 있어서 France 같은 단어를 발음할때 임의로 모음 [ɯ]를 넣어서 발음합니다. 정확한 발음을 위해선 이런 군더더기 모음을 빼버려야하죠. 근데 그러면 'ㅍ랑ㅅ'라고 적어야할려나? 모아쓰는 한글의 특성상 모음없이 자음만 있는 글자는... 참 애매하죠. 게다가 이렇게 적으면 한 글자에 1음절이라는 규칙마저 깨버립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국어에는 없는 수많은 모음들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는 산재되어있습니다. apple에서 a는 [애] 일까요 [아] 일까요? ㅐ도 아니고 ㅏ 도 아닌 모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해서 새로운 글자가 필요하겠네요... 이건 뭐 끝도 없습니다. 한글 자모가 100개가 되어도 힘들거같네요.


3. 새로운 문자를 추가한다고 언중들이 정확한 발음을 하게 되는가?


파일(file)과 파일(pile)을 똑같이 발음해서 구분안되는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문자를 추가함으로써 이를 해결할수 있다는 거지요. 아마 저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말(馬)과 말(言)을 구분못하고, 눈(雪)과 눈(目)을 구분못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으실거 같습니다.

여차여차해서 새로운 문자를 추가해서 pile은 '파일', file은 'fㅏ일'로 적게 됐다고 칩시다. 언제 '파일'을 쓰고 언제 'fㅏ일'을 써야할까죠? 현재 한국어에서 f는 음소로써 작용하지 못합니다. ㅍ의 변이음(allophone)으로 쓰이고 있는 상황이니, 당연히 최소대립쌍(minimal pair)를 이루지 못합니다. 이 말은 즉 ㅍ을 발음할 자리에 f를 넣어도 갸우뚱 하고 만다는거지요. 이런 상황에서 '파일'과 'fㅏ일', '팬'과 'fㅐㄴ' 등을 구분해서 적기 위해선 영어교육이 필수가 됩니다. 한글 맞춤법을 위해서 영어를 공부해야하는 상황이 오게 되는것이지요.


4. 어디 원음으로 적을 것인가? 


한글로 원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겠다는 생각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입니다. 어떤 발음이 원음이지요? 영어만 하더라도 크게는 영국식, 미국식 발음이 있고, 세세히 나누면 지역마다 방언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다 보니 사용지역에 따라서 발음법도 다양해져버렸지요. 인도 영어, 필리핀 영어 등등 발음법은 정말 각양각색입 니다. 어디를 원음으로 잡아야할까요? 사용인구가 제일 많은 미국식 발음으로? 아니죠. 사용인구가 많은건 인도식 발음이겠죠.


미국의 특정지역 발음법을 보편이고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왜일까요? 이 역시 고민해볼만한 문제군요. (그리고 다른 언어도 아니고 오직 영어만 저렇게 정확하게 표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재미난 일입니다. 전국이 영어에 미쳐있음.)


5. 한글의 목적은 무엇?


이런 주장을 하는 그 바탕에는 한글의 쓰임새에 대한 혼란이 있는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고, 못 적는 발음이 없다고 배워왔는데, 영어를 공부하고 또 다른 외국어들을 공부해보니깐 그게 아닌것이지요. 그래서 한글에 대해 실망하고서는, 한글을 개량해서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것 아닐까요?


한글은 전세계의 모든 말소리를 적기 위한 문자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글은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를 적기위한 문자입니다. 한국어를 잘 적어낼수 있으면 됩니다. 한글은 충분히 과학적이고, 한국어에 있어서는 못 적는 발음이 없습니다.


정확한 발음을 적는다는 것은 허구적인 일이라는 것 또한 알아야합니다. 한 언어라고 해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발음될수 있습니다. 어떤 한국인도 '일요일'을 모두 같게 발음하지 않습니다. 어제 발음한 '일요일'과 오늘 발음한 '일요일'은 같지 않지요. 인간의 인지능력이 변이음들을 하나의 음소로 매핑(mapping)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발음들이 같은 음소 배열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수 있는것입니다. 그러기에 문자란 그 문자가 표현하는 언어에 존재하는 음소들을 충실히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써 충분히 완벽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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