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똑같은 야훼(여호아)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신을 다르게 부르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과 '하나님'입니다. 사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는 건 복잡 미묘한 문제인데, 거기에 알게 모르게 교회 간의 알력 다툼까지 얽히면 호칭 문제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 되어버리지요. 그렇기에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천주교(및 성공회, 정교회)에서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고집합니다. 실은 이를 해결하기위해 여러 교파에서 공동번역성서를 만들기도 하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용어통일에는 실패하고 말았죠.
그래서 잘 살펴보면 아직도 용어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찾아낼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논쟁속으로 뛰어들어 잘잘못을 가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준비되셨는지요?
개신교 교파의 주장 중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 몇개를 가져와봤습니다. 긴 글 읽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1. 국어사전에 의하면 '하느님'은 범신론적인 의미도 담겨있는 표현이니 잘못되었다.
2.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샤머니즘에서 비롯된 단어이니 사용할 수 없다.
3. '하느님'이라는 말은 '하늘 님'에서 왔으므로 신을 하늘에 있는 존재로 격하시켜 부르는 것이니 신성모독이다.
4. 옛 성경 중 많은 수가 God을 '하나님'이라고 번역하였다.
5. '하나님'에는 '하나'라는 의미와 크다는 '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므로 더 적합하다.
6. 영어로 God과 god을 구별할 수 있듯이, 한국어로도 이런 구분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하느님'으로 표기에 차이를 두어야한다.
일단 본격적인 반박에 앞서 '하느님/하나님'의 어원에 대해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겁니다.
두 단어 모두 '하늘'의 옛말인 '하ㄴㆍㄹ'에 존칭 어미인 '님'을 붙여서 생긴 '하ㄴㆍ님'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가운데 점으로 표시된 것은 중세 국어에 사용되던 '아래 아'로 정확한 발음은 논쟁 중에 있습니다. 다만 18세기로 넘어오면서 '아래 아'의 발음은 소실되고 'ㅏ'나 'ㅡ'로 대체되기 시작했죠. 하지만 표기법은 살아남아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기 전까지 '아래 아' 표기를 관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1
천주교와 개신교의 하느님/하나님 표기가 갈라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천주교가 조선에 유입된 것은 서적을 통해서였죠. <천주실의>와 같은 서적이 중국을 통해 조선으로 유입되었고, 이를 공부하던 실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인것이 조선 천주교의 시초였습니다. 이를 작성한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신(God, Deus)'이라는 단어를 중국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상제(上帝), 천주(天主)의 개념으로 번역하였고, 이를 그대로 들여와 조선 천주교도 역시 '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천주(天主)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개신교는 19세기무렵부터 선교사들의 방문을 통해 북쪽에서 남쪽으로 직접 전파되었는데,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로컬라이제이션 정책(?) 덕분에 성경도 번역되어 들어왔죠. 북쪽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그 중심지로 평양이 부상하였기에 번역된 성경은 서북 방언을 주로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표준어가 제정되기 100여년 전의 일이었기에, 표준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당연히 표준어로 번역 따위는 불가능했겠죠) 2
이때 God(天主)를 번역어로 선택된 단어는 예전부터 하늘을 경외해오며 살아가던 우리 민족에게 '신'의 의미를 지니고 있던 '하늘', 혹은 '하늘님'이었습니다. 당시의 표기로는 '하ㄴㆍ님'이라고 쓰였죠. 다만 이때가 '아래 아' 음가가 소실되던 시기였기에 '아래 아'는 'ㅏ'로 혹은 'ㅡ'로 대체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번역 성경의 용어를 살펴보면 '하나님'과 '하느님'이 섞여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이라는 표기로 굳어집니다. 서북방언의 특성 상 '하ㄴㆍㄹ'이 '하날'에 더 가깝게 바뀌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아래 아'가 완전히 소멸되고 표준어가 제정되면서 하ㄴㆍㄹ이 하늘로 규정됩니다. 그 결과 자연스레 '하ㄴㆍ님'은 '하느님'으로 표기하게 되었죠. 한국 천주교에서는 줄곧 '천주'라는 표현을 써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천주를 번역한 '하느님' 역시 God을 지칭하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그 결과 같은 성경임에도 개신교와 천주교의 성경은 많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천주교와 개신교가 합의하여 공동번역성서를 편찬해 냈고, 여기서 '하느님'이라는 표현으로 호칭을 통일하는데 성공하는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파간의 입장차이로 공동번역성서를 도입하지 않은 곳이 더 많았고, 결국 호칭 통일에 실패하고 말죠.
여기까지가 '하느님/하나님' 단어에 대한 간략한 역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위에 나왔던 주장들을 반박해봅시다.
1. 국어사전에 의하면 '하느님'은 범신론적인 의미도 담겨있는 표현이니 잘못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경외하던 하늘은 당연히 범신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하느님'과 '하나님'을 찾아볼까요? (다음 사전)
하느님
(1) [종교]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린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되며,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린다.
(2) [천주] 가톨릭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하나님
[기독] ‘여호와(Jehovah)’를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
사전을 찾아보니 정말 '하느님'은 범신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하나님'에는 그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독교의 신을 나타내는데는 더 합당해보입니다? 이는 이 단어의 어원을 이해못하기에 발생하는 어원입니다. 잘 생각해봅시다. 다음 중 어떤게 논리적으로 옳은 사실인지?
A. 사전 상 하나님의 의미가 '기독교의 유일신'을 나타내기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B.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유일신'을 나타내는데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에, 사전에 그런 뜻풀이가 담겼다.
당연히 B가 논리적으로 옳은 사실이고, 사전의 편찬원리입니다. 근대 이후 기독교(특히 개신교)에서 자신의 신을 나타내는데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에 그것이 사전에 등재되었고 저런 뜻풀이가 달린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천주교에서 자신의 신을 나타내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전통적으로 우리조상들이 숭배하던 '하늘'을 가리키는데에도 사용하므로, 저런 뜻풀이가 달린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의 어원에서도 적었듯이, 두 단어 모두 '하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2.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샤머니즘에서 비롯된 단어이니 사용할 수 없다.
이 주장은 '하나님'은 샤머니즘적인 배경에서 비롯된게 아니라는 가정을 근거로 하는 것인데, 위에서 밝혔듯이 두 단어 모두 같은 배경에서 갈라져 나온것이기에, 타당하지 않은 주장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신'을 부르는 단어는 샤머니즘적인 배경에서 출발했습니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민족은 다신론적인 종교관을 한때 가지고 있었으며 신이라는 단어는 이때 유래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어의 God, 라틴어의 Deus만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모두 처음에는 다신교의 여러 신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가, 후에 기독교화되면서 의미가 바뀐 것입니다.)
3. '하느님'이라는 말은 '하늘 님'에서 왔으므로 신을 하늘에 있는 존재로 격하시켜 부르는 것이니 신성모독이다.
확실히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을 '하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뭔가 포스가 모자라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그 위엄을 제대로 살려서 부를수 있을까요?
영어의 God은 '부르다, 호소하다'는 의미의 원시인구어 ghweH-에서 유래되었고, 라틴어의 Deus는 '하늘'이라는 뜻의 원시인구어 dyew-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위 주장대로라면 수많은 영어로 쓰인 성경, 라틴어로 쓰인 역사적인 성경들 및 어마어마한 수의 기독교 신도들은 모두 신성모독을 저지른 것입니다.
4. 옛 성경 중 많은 수가 God을 '하나님'이라고 번역하였다.
위에 언급되어있듯이 번역된 성경 중 대다수가 평양을 중심으로 하였기에 서북방언을 타겟으로 하였고 그 결과 서북방언이 반영된 것입니다. 또한 이때는 표준적인 표기법이 등장하지 않았기에 이때를 근거로 지금의 표현을 정당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글 맞춤법이 공포되었으니, 이를 따르는게 합당한 것이죠.
이 주장을 그대로 따르면 우리는 '가을'이라는 단어 대신에 옛날에 많이 쓰였던 표현인 'ㄱㆍㅿㆍㄹ'이라고 써야하고, '잔디'라는 단어 대신에 '잔듸'라고 써야할 것입니다.
5. '하나님'에는 '하나'라는 의미와 크다는 '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므로 더 적합하다.
어원 상 '하나님'에는 '하나'라는 의미도 '한'이라는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언어로도 신을 나타내는데 One Sir, Big Sir처럼 부르지 않습니다.
6. 영어로 God과 god을 구별할 수 있듯이, 한국어로도 이런 구분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하느님'으로 표기에 차이를 두어야한다.
일반적인 '신(god)'이라는 의미와 '기독교의 유일신(God)'을 구분하여 써야한다는 주장입니다. '하느님'는 일반적인 '신'을 가리키므로, '기독교의 유일신'을 가리키는 '하나님'을 쓰자는 것이지요. 일단 어두를 대문자로 표기함으로써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를 구분하는 방법은 몇몇의 언어에서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입말(구어)로는 변별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영어를 비롯한 몇 개 외국어에서 보통명사과 고유명사를 구분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주장은 사대주의일뿐입니다. 게다가 중세시대 내내 사용되었던 라틴어로도 deus와 Deus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도달하신 분이라면 '하나님'을 써야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비약하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 '하나님'을 사용하는 게 잘못되었으므로 고치자고는 말하지 않을래요. 개신교도들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언어는 언중들이 사용하는대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개신교도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 표현이 '기독교의 유일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겁니다. 다만 '하나님'이 옳고 '하느님'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근거없는(혹은 개소리 근거를 가지고 있는) 주장은 하지 말길 바랄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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