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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대생을 위한 역사 이야기 2. 사학에서는 뭘 배우나요

잉여/미래

by ∫2tdt=t²+c 2014. 3. 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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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는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역사학에서는 무엇을 공부하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역사학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사실 중고등학교 때 사회/역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사학에서 뭘 배우는지 정도는 다들 알겁니다.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고, 1492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으며....

의무교육 과정에서 배우는 역사는 (연도, 일어난 사건)의 순서쌍을 일일히 외우고, 이걸로 시험을 보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몇몇 역덕들을 제외한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저렇게 몇년에 뭐가 일어났고, 그 다음해에 뭐가 일어났는지 외우는 일은 정말로 지루하고 어렵습니다. 이것 때문에 역사공부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이건 시험을 쳐서 순위를 매겨야하는 비정상적인 교육 구조에 의해 역사교육이 왜곡되었기 때문인것이지, 시기별로 일어난 사건을 암기하는 것은 역사학의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역사학에서는 무엇을 배우느냐. 이공대생을 위해 비유로 표현하자면, 그래프를 그리는 법을 배웁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하면



쉬운 이해를 위해 시간을 x축으로, 사건을 y축으로 표시한다고 약속합시다. (물론 사건이란게 계량화되어서 축상의 지점으로 나타날수있는건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이렇게 표현한거니 오해하지는 마시길!) 역사학에서는 과거 인간이 해온 모든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변화과정을 추적하여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과거의 특정지점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알아야겠죠. 이를 위해서 역사학에서는 과거의 기록을 샅샅이 뒤지는 작업을 합니다. 비단 기록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유물, 구전 기록 등도 과거의 사실을 알려줄수 있다면 전부 활용합니다. 이렇게 과거의 사건을 알려줄수 있는 단서들을 사료(史料)라고 합니다.

사료를 뒤져서 나오는 결과들로 위 그래프에 점을 찍을 수 있는 거죠.

우리가 흔히 역사교과서에서 공부하였던, 1392년 조선 건국, 1592년 임진왜란과 같은 시기별 사건들이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1392, 조선건국), (1592, 임진왜란) 으로 써서 좌표평면에 나타냈다고 칩시다. 그러면 위 처럼 적당히 점이 찍힐 겁니다.


하지만 점을 찍은 것은 역사 연구의 시작일 뿐이죠.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래프를 그려내어서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 전체를 알고 싶으니까요. 찍힌 점을 가지고 적당히 이어서 다음과 같이 그래프를 그릴 수 있을겁니다.


근데 저렇게 삐뚤빼뚤하게 발전해왔는지 의문이 들게 되겠죠. 과거의 사건을 알려주는 수많은 흔적들이 있지만, 그 흔적이 모두 100% 확실할수만은 없습니다. 유물의 경우 오염되었을 수도 있고, 기록의 경우 조작되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사료비판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료비판은 해당 기록이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 파악하고(외적 비판), 기록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지는 않은지, 실제로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인지 파악하는(내적 비판) 일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료비판을 해내어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내용들은 쳐내게 되지요.


사료비판 과정을 통해 두번째 위치한 볼록 솟은 점을 쳐냈다고 칩시다. 그러면 남은 점을 가지고 위 그림처럼 그래프를 그릴수 있겠죠.

근데 이 점을 가지고 그릴 수 있는 그래프는 저것뿐만이 아니죠. 연구자가 백 명이면 백 가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주어진 점은 4개인데 그걸 가지고 몇 백년 사이의 사건을 설명하려고 하니, 여러가지 해석 가능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위처럼 같은 4개의 점을 가지고도 다양한 그래프를 그릴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입니다. 대게 과거를 알려주는 자료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도 합리적으로 과거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되기에, 같은 자료를 보고도 전혀 다른 이론이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등장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다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존중받는 것은 아니죠. 과학계에서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용어가 있는것처럼, 대게 간단하면서도 더 합리적이고,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주장이 더 호응을 받는건 역사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여러 이론들이 대치되는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많은 사료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더 많은 자료를 구하다보니, 위 그림처럼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어떤 그래프가 더 설득력을 얻게 되는지는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기에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집/연구실/서재를 살펴보면, 별의 별 잡동사니를 비롯해서 책이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점을 모을 수록, 더 정확한 그래프를 그릴 수 있으니깐,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항상 뭔가를 찾고있고, 뭔가를 읽고 있죠.

이 때문에 역사학의 이미지가 뭔가 쪼잔하게 아무도 신경 안쓰는 사소한 과거 사실에 집착하고 암기하고 이러는 것처럼 굳어진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그러는 이유는 더 정확한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서 그러는것이라는 걸 간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프 얘기가 나온 김에, '역사공부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거리가 하나 더 늘었군요. 그래프를 정밀하게 그릴수록, 그 경향성을 더 잘 파악하게 되겠죠. 그렇기에 역사학은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변해나갈지 통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 정도 설명이면 사학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으셨을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시한번 말하지만, 사건이라는 것이 그래프에서처럼 계량화될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2차원상의 점으로 나타낼수있는것도 아니라는것. 실제로 하나의 사건에 개입되는 변수는 너무도 다양하기에, 일련의 사건을 복합적으로 분석하고 그 경향을 파악한다는 것은 엄청난 논리력과 창의력(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앞선 글에서 역사를 공부하면 논리력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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