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냥 옛날 이야기 1] 홈페이지 붐과 초3

적분史

by ∫2tdt=t²+c 2014. 4. 5. 15:05

본문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내 삶을 정리할때 지금의 나를 만든 제일 중요한 시기를 꼽아보자면 2000년, 초3 때일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태동하려는 시기. IT붐이 막 일고 있던 시기였다. 야후 코리아의 위상이 하늘 같았고, 한미르가 살아있던 시기. 이때 초3의 인생을 바꿀 커다란 사건 2개가 일어났는데, 그 중 하나는 홈페이지 제작이었다. (다른 하나는 스타크래프트로 다음 이야기에서 다뤄야할듯)



2014년 현재까지도 꿋꿋이 살아남아 발행을 계속하고 있는 과학소년



언젠가부터 엄마가 과학소년이라는 과학 잡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뜬금없이 '나만의 홈페이지 만들기'라는 주제로 글이 하나 실려왔고 그걸 본 초3 소년은 어마어마한 감명을 받은것이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였기에 정말로 설명이 간단했고, 초3 수준의 이해력이면 누구나 메모장 켜고 타이핑 따라하는것만으로 만들어볼수 있었다. 실제로 해봤는데 정말로 되는것이었다. 아아 이게 초3 아이에겐 얼마나 큰 감명으로 다가오던지.


이때 한미르에서는 나만의 홈페이지 만들기 붐을 따라 회원들에게 홈페이지를 위한 호스팅을 제공하고 있었다. (말이 호스팅이지 html만 사용할수 있었음ㅋ) 한미르에 가입을 하고 20MB의 웹 용량을 얻은 뒤에 공들여 만든 HTML 파일들을 열심히 웹에다가 올렸다. 이때가 바로 적분이 첫번째로 코딩을 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제는 추억에만 남게된 포탈 사이트 한미르.



물론 게임을 하는게 훨씬 재밌었겠지만, 당시 부모님이 컴퓨터를 오래못하게 막으셨기 때문에 게임을 길게 할수없었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만든다고 하니 생산적인 일이라고 흔쾌히 컴퓨터를 내주셨기 때문에 게임보다 더 오랜시간 홈페이지 제작에 시간을 쓸수 있었다.


그때 과학 소년에서 HTML을 설명해주면서 참고하면 좋을 사이트로 홈제작바이블을 소개했었다. 바이블이 무슨뜻인지 전혀 몰랐던 초3이었기에, "사이트 이름 거참 이상하네"하면서 접속해보았던게 아직도 기억에 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딩이었지만, 홈제작바이블 운영자님이 글을 참 쉽게 써놓았기에 어렵지 않게 강의를 쓱쓱보면서 따라해볼 수 있었다. 홈페이지 만들기 붐을 타고 다들 홈페이지 제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사이트에 고마움을 느낀 사람이 한둘이 아닐거라고 장담한다. (불행히도 이 사이트는 시간이 흐르면서 닫혀버렸고, 영영 찾아볼수 없게 되는줄 알았는데... http://homebible.onmaru.com/ 최근 다행히도 누군가에 의해 복원이 되었다. 분명 이 사이트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향수를 가지고 있던 사람일거다.)


당시 웹 환경은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HTML 4와 XHTML이 발표된 직후였지만, 아직 웹 표준이란 건 찾아볼수 없던 시기였다. 하늘 같았던 넷스케이프의 위상이 무너지고 윈도95, 98에 내장되어있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해볼수 없는 IE 4, IE 5의 시절이었다. 뭐 요즘의 브라우저들도 상호 호환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당시의 넷스케이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서로 지원하지 않는 자체 기능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넷스케이프용 페이지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초3이 HTML4이니 CSS이니 이런 걸 공부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금의 웹사이트들에서는 찾아볼수 없지만 당시에는 font 태그를 남발하고, table로 레이아웃을 잡으며 태그별로 width, height, background를 일일히 지정해주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좋은 에디터들이 존재하는 것도 몰랐기에 오로지 메모장만을 이용해서 저런 난잡한 코드를 작성하는게 잉여로운 초3의 일과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의 코딩 스타일이지만 또 어찌 생각해보면 정말 개판 오분전 코딩이기도 하다.)


어찌저찌해서 간신히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근데 정말 그냥 만들었다. 나만의 홈페이지... 정말 나만의 홈페이지였다. 목표로 하는 주제도 없었고, 컨셉도 없고, 아무 내용도 없는 홈페이지였다. 도저히 채워넣을 내용이 없어서 우리 가족의 홈페이지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페이지 4개를 만들고, 내꺼, 동생꺼, 엄마꺼, 아빠꺼 해서 나눠주고 각자 내용을 채워넣어달라고 했던게 기억이 난다. (근데 결국 아무도 채워넣지 않아 텅텅 비게 되었다는 후문이...)


하도 써 넣을 내용이 없어서 집에 있던 유머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기도 했다. 그 (재미없던) 유머가 딱 하나 기억에 난다.

아빠: 딸아, 넌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딸: 전 우주비행사가 되어서 태양에 가고 싶어요.

아빠: 음, 태양은 뜨거워서 못 갈거같은데?

딸: 누가 낮에 간대요? 밤이 갈건데

그렇다. 이런 의미없는 내용들이 가득 들어있던 그런 웹사이트였다. 그래도 초3은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웹사이트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근데 방문자가 없는걸...? 친척들에게 다 전화해서 홈페이지 들어오라고 사이트 주소를 불러줬다. 


검색엔진 기업 구글이 1998년에 등장했지만, 당시는 2000년. 아직까지는 웹 로봇에 의한 크롤링 방식보다는 사람들이 일일히 수작업으로 웹사이트를 디렉토리로 분류해서 등록하는게 일반적인 시기였다. 당연히 막 인터넷 개통된 초3 어린이가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을 알고있었을리는 만무하고, 아마 당시에 잘나가고 있던 포탈사이트 야후 코리아에 사이트를 직접 등록했던걸로 기억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야후 코리아...

근데 디렉토리 등록이 받아들여졌는지는 확인 못해봤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등록 신청까지만 하고 그 이후에는 관심이 떠난건지 어쩐건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데 만약 등록이 됐다면 흑역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끈기 부족한 초3 소년답게 홈페이지 제작에 대한 열망은 몇 년 가지 못했지만, 그 불꽃은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웹페이지들이 HTML문서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반 응용 프로그램들도 HTML마냥 어떤 문서 형태로 되어있을거라는 과감한 추측을 한다. 메모장으로 수십번 exe 파일들을 열어보지만 전혀 알수 없는 깨진 글자들만 계속 나타났기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을거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