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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경제와사회] 3.(2) 초기 농경과 원시공동체의 해체

수업노트/한국고대경제와사회

by ∫2tdt=t²+c 2013. 9. 1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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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농경의 모습 :  벌목화경(slash and burn)


한반도는 신석기 후기 정도부터 농경이 시작되었음, 본격적으로 농사짓기가 널리 퍼진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일것 

도끼로 나무를 베어내고 불태워서 재로 만들고 보습으로 고랑을 만들어 씨를 뿌리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청동기 시대에도 이 방식은 계속 됨. 2~3년 정도 반복하면 땅이 척박해지고, 지력 회복에는 15년에서 40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농사를 옮겨가면서 지어야만 했다. 또한 생산력 수준이 낮았기에 수렵과 채집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포항 부포리 유적: 길다란 돌도끼가 수없이발굴됨. 벌목화경의 증거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3000~3500년 전쯤의 주거지 유적, 경작과 수확과 조리를 하는 일련의 도구가 발견됨 



*농경의 발전과 잉여생산물의 등장


교과서 상의 도식으로는 잉여생산물의 누적비중이 몇십년 몇백년에 걸쳐 차이가 나면서, 지도력의 차이가 생기고 그 결과 지배관계가 성립되었다고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생각이다.

잉여생산물이 먼저인지, 잉여노동력이 먼저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A. 고대인들이 몇번 농사를 지어서 잉여생산물이 나타났다면, 힘들게 모든 경지를 다 경작하지 않고, 먹고 살만큼만 경작하지 않았을까?

- 생산력이 발달한다고 그것이 바로 잉여생산물의 축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 A에서 제시한 대로 생산력이 늘어난 만큼, 적게 일하고 남는 시간을 쉬면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즉 생산력의 증대가 잉여생산물 축적 더 나아가 빈부격차, 지배관계 형성의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다.


B. 씨족장이나 부족장 등이 현명하였다면 이 남는 노동력을 다른 곳에 사용하여(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농사를 덜 짓게하고 도끼를 만들게하는 식으로) 분업을 꾀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생산력이 발달하여 발생하는 남는 시간, 남는 노동력을 어디에 쓸것인지 누가 결정했을까?' 도 좋은 질문인듯. 남는 노동력을 각자 자기가 쓰고 싶은대로 사용하며 낭비했다면 사회는 계속 원시 사회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 노동력을 특정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사회가 바뀌어 나간것 아닐까? 즉, 남는 노동력을 어느 방향으로 사용할지 결정하는 사람 혹은 권력이 이미 존재하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


어쨌든 권력은 이런곳에서 발생하고 발전했을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청동기의 사용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신석기 중기 말기에도 생산력, 권력차이가 나타나고 불평등이 있었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음. 어쩌면 청동기가 등장함으로써 지배자가 나타날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배자 때문에 청동기를 발견하게 된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우하량 유적: 마을 유적, 분묘, 제단 유적까지 포함됨. 대형무덤이 이미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지고, 무덤 안에서 정밀하게 만들어진 토기 등이 발견됨. 

-홍산 문화: 역시나 신석기 시대 불평등의 증거들이 나타남 

-아직 한반도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뚜렷한 불평등 자체가 발견되지 않고 있음. 전체 경제 규모가 작아서 큰 불평등이 발생할 수 없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한반도의 농기구

농기구: 와이섹 참조, 따비, 살포 중요! 

살포는 한반도 특유의 농기구로서, 초기에는 김매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나중에는 미니어처로 제의적인 목적으로 변경되어 조선때까지 사용됨 

유구: 고랑이 파여있는 돌도끼, 홈에 나무를 끼워사용 

청동기 시대에 들어오면서 기구들이 정교해지고 크기가 작아짐. 그러나 농기구로는 여전히 석기를 사용했기때문에 농업생산력은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청동기로 정교한 공구를 만들어, 목재를 다듬을수 있게 하고 그 결과 농기구의 품질이 올라가 농업생산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게 더 논리적. 



*철기시대와 고대 국가

철기시대 초기의 양상: 양금(청동기)으로 무기를 만들고, 악금(철기)으로는 농기구를 만들것 -> 철기가 다루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대 국가의 국력 역시 농업생산력에 기반하는데, 이는 논농사보다는 밭농사의 비중이 더 높다. (논농사의 비중이 높아진것은 훨씬 이후의 일) : 백제, 신라보다도 평야가 적었던 고구려가 앞선 사회일수 있었던 것은 중국으로부터 육로로 전래되는 선진 밭농사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수도 있다. 

유리왕 설화: 칼을 쪼개서 맞춰보는 것으로 자식임을 확인하는 것 : 청동은 부러지는 성질을 갖고 있음. 고구려가 청동무기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음 

고대의 오곡: 시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중국의) 1. 기장: 가뭄에 잘 견디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생존, 그리고 지배층의 제의에 필수적으로 포함됨, 2. 조, 3. 도(벼), 4. 밀, 5. 숙(콩): 지배층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주 먹음 

麥: 보리라는 의미도, 밀이라는 의미도 있음. 소맥: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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