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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경제와사회] 1. 서설 - 시각

수업노트/한국고대경제와사회

by ∫2tdt=t²+c 2013. 9. 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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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화에 대한 재고 및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요인으로써의 경제


OT 때 제기했던 질문에서 나아가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요소 중 경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혹은 그 변화를 막는 요인을 살펴볼 때는, 장기적 측면과 단기적 측면의 변화를 구분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학파로 '아날학파'가 있다.) 강물에서 일어나는 변동에는 국소적으로 일렁이는 파동도 있고,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가는 물의 흐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소적으로 일렁이는 물의 파동은 물이 흘러가는 방향에 영향을 미칠수 없듯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도 단기적인 변화(==국소적인 물의 파동)와 시류를 바꾸어나가는 장기적인 변화(전체 물의 흐름)을 구분해야한다.

지금까지의 (한국의) 역사학은 변화에만 너무 주목하지 않았나? 그래서 사소한 변화조차도 발전으로 명명하는 확대해석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모든 변화가 발전인것일까? 변화를 발전으로 명명하는데에는 엄격함이 필요하다. 모든 변화를 발전으로 여기는 실수는 한국사 연구에서 자주 살펴볼 수 있다.


* 경덕왕의 한화(漢化)정책: 이전까지 순우리말이었던 관직명, 지명 등을 한자어로 바꾸었음 : (일부 학자는 이를 개혁이라고 부른다)

* 혜공왕의 한화정책 철회: 귀족들의 반발로 인해 한자어로 바꾼 관직 등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 놓음 : (이 역시 일부 학자들이 개혁이라고 부른다)

-> 와우! 모순!


한국사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일제 이후 한국사 연구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식민사관 극복이었고, 식민사관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론'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한국사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변화를 엄격한 기준없이 '발전'으로 보려고 하였던 것.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야 할때이다. 또한 변화와 변화의 원인, 결과에 대해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가 없는 사회가 '왜 변하지 않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 역시 필요하다. (아날학파의 장기지속구조 살펴볼것)



3천 여 년이 넘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경제의 역할과 비중이 늘 동일하진 않았다. 따라서 현대에서 자본주의의 역할과 비중이 막중한 것을 유비하여 고대에서도 경제가 매우 중요학 역할을 했을거라고 판단할 수 없다. 그 예로 한 무제의 서역무역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들 수 있다.


* 한 무제의 서역무역: 이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 것은 사실. 한 무제가 서역의 말을 굉장히 좋아했다는 기록이나, 서역에서 유입된 목숙(토끼풀과 식물의 한 종류)이 말 먹이 및 관상용으로 쓰였던 사실은?

*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 것 역시 사실. 알렉산더 개인의 정복욕과 호기심은? (지도자의 개인욕을 위해서 그 큰 군단이 움직였다는 것 역시 납득하기 쉽지 않음)


이러한 예를 통해 시대별로 경제의 역할과 비중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위의 두 사건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이 필요하다.


2. 고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학술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고대, 중세, 근대라는 3시대 구분법은 편의 상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일뿐, 이를 과학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하일식, 2010, [신라말 고려초의 지방사회와 지방세력][[한국 중세사 연구]] 29)


시대 삼분법은 르네상스(중세 말기)에 등장한 개념으로, 그 당시 학자들은 자신들이 일군 문명이 찬란하였던 고전 고대(antiquus)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자신들이 다시 일궈낸 이 시기를 '지금'이라는 의미인 modo로 이름붙이고, 고전 고대 시기를 옛날이를 뜻의 antiquus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 사이의 시기를 중간이라는 의미의 medium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시대를 셋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그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과거와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고, 학자들은 전쟁 전과 후를 구분하기 위해 현대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이렇게 시대 구분법은 편의상의 구분을 위해 등장한 것으로 엄격한 과학적 기준을 통해서 성립된 것이 아니었는데, 마르크스가 사회구성체론을 제시하면서 혼선이 오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사회구성체론에서 인간 사회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역사의 시대들과 대응시켰다. 노예제적 사회구성체, 영주-농노제적 사회구성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가 마르크스가 제시한 인간 사회의 유형들이었는데, 시기상 대체로 고대는 노예제적 사회구성체, 중세는 영주-농노제적 사회구성체, 근대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와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대체로 고대 시기의 사회는 노예제적 사회구성체를 보이더라'라는 말이지, '노예제적 사회구성체를 가진 사회는 고대 시기에 머무르는 것'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편의상 나누었던 시대 삼분법과 과학적으로 정립한 사회구성체가 대응되게 된다.

한국사를 연구하던 백남운 선생은 사회주의자였던만큼, 당연히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을 받아들였고, 한국 역사에서 고대의 노예제 사회를 입증하고자 노력하였다. (서양사를 바탕으로 짜여진 3시대 구분론을 아무런 비판없이 한국사에 적용하려고 했던 한계가 보임) 백남운 선생에 의해 시작된 한국사 시대 구분론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지만, '극도한 반공사회'라는 성격상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에 대한 제대로된 연구나 분석이 있을 수 없었다. 3시대 개념이 과학적으로 정립된 것이라는 오해는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에서 원인하는데, 해방 이후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고, 결국 3시대 개념은 아무런 비판없이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사용된다. ([[한국사시대3분론]] 참고)

3시대 구분을 중요시여기는 입장에서 자주 인용하는 크로체의 말 "역사를 사유하는 것은 역사를 시대구분하는 것이다"은 실제로 역사를 3시대로 구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니라, 역사란 시간의 흐름상에서 특정한 경향을 발견해내고, 이 시기와 저 시기에서 그 경향이 어떻게 다른지를 밝혀내는것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편의상 이 강의에서 말하는 고대는 통일신라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하며, 그 개념이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는 것.


사회, 국가란 무엇인가? 엥겔스는 "국가는 사회로부터 생겨나서 사회로부터 차츰차츰 소외되다가, 나중에는 사회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베버는 "국가는 일정 영토내에서 물리력을 단독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상황 발현에 성공한 인간의 무리이다"라고 생각하였다)

마르크스나 베버의 생각과는 또 다른 제 3의 국가관을 제시한 Karl Polani라는 학자가 있다. 재분배라는 측면에서 국가와 사회를 분석한다. [[대전환]], [[사람의 살림살이1 , 2]](선생님께서는 사람의 살림살이를 추천하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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