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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옛날 이야기 2] 스타크래프트와 드래프트

적분史

by ∫2tdt=t²+c 2014. 4. 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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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남학생의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스타크래프트였다. 98년 발매된 스타크래프트는 대대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한국에 상륙했는데 그 덕에 당시 동네 컴퓨터집에서 산 컴퓨터라면 어딜가나 립버전 스타크래프트가 들어있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영어를 초3때 간신히 배우기 시작했다는거고(당시 교육과정을 따르면 초3때 처음으로 영어가 주3시간 포함되게 되어있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는것이다.


친척이었는지 이웃집 형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튼 어떤 형이 놀러왔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컴퓨터가 집집마다 보급되면서, 친구나 친한 사람 집에 놀러가면 서로 각자 집에 깔린 게임을 보여주는게 통과의례처럼 되어있었다. 나랑 동생도 당연히 놀러온 형한테 우리집 컴퓨터에 깔린 게임들을 자랑해보였었는데, 그중 하나가 Virgin사에서 나온 윈도우판 알라딘였고, 또 다른건 지금은 망해버려 사라진 컴파일사의 뿌요뿌요2였다. 근데 형은 이 게임들을 별로 재미없어했다. 그래서 게임들을 끄고는 컴퓨터를 뒤적뒤적하며 다른 게임을 찾았는데 그때 스타가 깔린걸 알아낸것이다.





스타를 켰을때 처음 로딩화면은 정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입술에 피가 살짝 흐르는 창백한 케리건의 얼굴은 초3, 초2 남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할만했다. 무서운 화면은 곧 지나가고, 알수없는 말로 적힌 버튼을 이것저것 누르니 게임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형이 하던 게임이 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형이 플레이했던 게임은 브루드워 에피소드4 - 아이어에서의 탈출(브루드워 프로토스 첫번째 미션)이었다. 아직도 그 게임장면은 생생히 기억에 난다.


RTS라는 장르를 접해본적은 초3학생이었기에 그 게임 플레이 방식은 참으로 신선했다. 또한 그 장엄한 분위기와 배경음악, 효과음, 프로토스의 건물들은 처음보는 사람들도 눈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 형은 게임을 좀 하다가 저녁이 되어서 돌아갔고, 동생과 나는 새로운 놀거리를 얻었다. 이게 스타크래프트와 나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동생이나 나나 영어는 전혀 못하던 시기였고, 엄마아빠한테 게임한다고 영어좀 해석해달라고 할수도 없으니 그저 플레이만 할뿐이었다. 처음에 싱글플레이 선택하고 오리지날/브루드워 선택하는것도 할줄 몰라서 꽤 오랫동안은 오리지날만 만지작 거렸다. 미션 초반부에서 튜토리얼을 상세히 가르쳐주지만, 영어를 하나도 못알아들었기때문에 저글링 하나 뽑을줄 몰랐다. 오리지날 저그 첫번째 미션에서 드론 잔뜩 뽑아서 공격가던게 아직도 기억에 난다. (당시에 스포닝풀을 짓지 않은 이유도 명확히 기억이 난다. 짓기에 너무 비싸서(미네랄 150[각주:1]) 그 옆에 있던 반값짜리 에볼루션 챔버(미네랄 75)를 지었기 때문.)


처음 컴퓨터와 커스텀 게임을 플레이할 때도 종족을 고를줄 몰라서 저그만 했었다. (종족 고르는게 기본적으로 저그로 선택이 되어있는데, 아예 영어를 몰라서 그걸 바꿀수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저그로 플레이하면 처음에 미네랄 50으로 가스 추출장 짓고, 남은 드론 세 마리로 가스만 열심히 캐며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컴퓨터의 러쉬에 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다보니 말은 못알아들어도 경험적으로 뭐가뭔지 알게 되면서 게임을 파악해 나갈수 있었다. (게임에 대한 열정은 참 대단해서...)


스타크래프트가 초3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느냐는 질문에서 너무 벗어나버렸다. 초3의 인생을 게임판으로 바꾼게 전부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스타는 그외에도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먼저 영어에 대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 초등학교 남학생들이라면 다른 영어단어는 몰라도 스타에 나오는 영어단어는 다 알았다. 오죽하면 영어 선생님이 애들이 단어 잘모르면 스타크래프트 얘기를 하면서 단어를 설명해주었겠는가.

다른 하나는 드래프트였다. 스타크래프트가 히트를 치면서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데이터를 변형해서 플레이하는 MOD가 나타났는데, 당시에 이를 드래프트라고 불렀다. 스타를 즐기며 놀던 어느 날 옆 동에 살던 형이 포켓드래프트라는게 있다며 스타크래프트인데 포켓몬이 나오는 신기한 게임이라고 소개를 해줬다.



포켓드래프트 플레이 장면. 사실 그냥 저그 유닛 일부분의 그래픽을 포켓몬으로 바꿔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당시 포켓몬스터가 대박을 치면서 이 역시 같이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 통해 초3 어린이는 드래프트라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께임의 데이터를 마음대로 수정해서 이런걸 만들어 낼수있다는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래서 더 찾아봤다. 인터넷 검색을 유용하게 쓴 몇 안되는 경우였던듯.



나름 그래픽도 깔끔하고, 밸런스 수치들도 다 바뀌어서 플레이하는데 색다른 재미를 주었던 건담드래프트 스샷.

건담드래프트라는 것도 알게됐다. 드래프트라는게 단순히 이미지만 바꿔치기하는게 아니라 수치를 조작해서 자기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낼수도 있다는걸 깨달았다.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건 이런 드래프트를 만드는게 몇몇 숙련가만 할수있는게 아니라, 툴만 다루면 누구나 할수있다는 사실이었다. 드래프트를 받는김에 드래프트 툴도 다운받았다.


[그냥 옛날 이야기 1]에서 했던 홈페이지 제작 이야기가 이거랑 뭔 상관이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둘은 여기서 만나게 된다. 스타크래프트의 경험과 홈페이지 제작의 경험이 만나면서 '나도 나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도달하게 되었기 때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1. 당시에는 패치 이전이라 스포닝풀의 가격이 미네랄 150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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