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숭례문 부실 복원으로 인해 여론이 떠들썩합니다.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한다고 하면 전국민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죠. 좋게 말하면 한국인들은 자국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할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한국인들은 문화재 문제에 발끈한다고 말할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주변사람들한테 대뜸 문화재가 왜 소중한거야? 왜 보호해야하는거야? 라고 물으면 다들 우물쭈물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시의에 적절하게 편승하여(?) 문화재와 그 전통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할겁니다.
1. 문화재는 왜 소중한가요? 왜 보호해야하는거죠?
저도 답을 잘 모르겠어요. 인터넷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문화재를 보호하면 민속적인 면에서 의, 식, 주 모두가 진정한 우리 것이 됩니다. 한민족의 민족성을 되 찾을 수 있습니다. 유형적인 문화유산을 하나의 관광지, 여행의 소품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유산의 내력과 조형적미를 음미하거나 감상하는 태도로 민족의 장래성이 생기게 됩니다.
민족의 장래를 위해 문화재를 보호해야한다고 하네요. 여전히 이해할수가 없군요. 다른 답을 더 찾아보았어요.
문화재를 보존하면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게되어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함과 아울러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국민의 문화적 향상과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는것이 보호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흐으으음.
첫째. 조상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조상의 슬기와 멋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조상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조상의 신앙과 종교 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조상의 학문.산업 발달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오 이건 정리가 잘 되어있는듯 하군요. 위의 다섯가지 이유는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다는 하나의 이유로 통합이 가능합니다.
그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문화재가 소중하고, 보호해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되겠네요.
A. 과거의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있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알수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에
B. 국민들이 문화재를 보며 민족성을 되찾고, 문화적 수준을 높여서 민족의 장래를 발전시킬수 있기 때문에
A는 문화재의 학술적 가치라고 말할수 있겠네요. 문화재가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B는 문화재의 민족적 가치(?)라고 정리해볼수 있겠습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문화재 보호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문화재가 훼손되었을때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아, 과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는 단서가 사라졌구나 안타까워라"보다는 "한민족의 소중한 유산이 훼손되다니. 우리 민족의 얼을 잃어가고있다"에 가깝지 않나싶습니다. 그래서 고민해보았습니다. 문화재가 민족성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2. 잠깐, 근데 문화재가 어떻게 민족성에 영향을 주는데요?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은거 같네요. 어떻게 문화재가 민족성에 영향을 주는지. 문화재를 쳐다보고 있으면 막 애국심이 샘솟아 오르고, 자동으로 스스로가 한민족이라는데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것은 아닐테고.
자, 여기 사진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거에요. 막 민족성이 뛰어나지는 느낌을 받으십니까? 아무 감흥도 없으면 당신은 매국노입니다... 라고 말할순 없겠지요.
누가봐도 커다란 돌덩이에 불과한데요 뭘... 고고학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이 고인돌이 어떤 유형의 고인돌이고 여기에서 무엇을 알수있는지에도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이게 고인돌이라고 밝혀지기 전에는 그냥 돌탱이에 불과하다고 여긴 사람도 많을겁니다.
여기 사진에 또다른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걸 보면 민족성이 뛰어나지고 한민족이라는게 자랑스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이건 누가봐도 공들여만든것이 분명하고 조형적으로, 예술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죠.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볼까요? 왜 고인돌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금동대향로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다른것일까요? 저는 과감히 두 문화재 모습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합니다. 그냥 돌처럼 보이는거랑, 공들여 만든것처럼 보이는건 우리가 보기에도 다르게 보이고,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다르게 보일겁니다.
만약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조상들이 만든 유산 중 하나를 소개시켜달라고 한다면, 둘 중에서 무엇을 고를건가요? 백이면 백 금동대향로를 고를것이라고 추정해봅니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겉모습의 차이에서만 나오는것은 아닐겁니다. 두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학술적 가치도 분명히 다르거든요. 확실히 금동대향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높다는건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의 국민은 학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잘 모르니, 이를 바탕으로 문화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모습, 즉 더 문화재스럽게(?) 생기고 가치있게 생긴것으로 문화재를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외국인들이 보았을때, 우리 민족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보여줄수 있는지의 여부가 문화재의 민족적 가치의 근본에 있지 않나 추정해봅니다. 민족성이 있다는건 다른 말로하면 한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고, 자랑스럽다는건 남들에게 보여주는걸 바탕으로 전제하고 있으니까요.
거칠게 표현하자면(어그로를 끄는건 아니지만, 끌릴수도 있으니 주의요망) 문화재를 보며 민족성을 되찾는다는 말은, 문화유산을 보며 자뻑을 하고 흐뭇해하겠다는 말인거죠.
문화재를 보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는것도 필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모든 문화재게 적용되는것이 아니라, 일부 가치있어보이는 문화재에만 해당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수없이 많은 고인돌이 훼손되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에 대해 신경쓰지 않습니다.) 또한 이 때문에 문화재가 진짜 소중한 이유에 대해 신경쓰지 못하게 되는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격하게 이 글을 쓰고 있는거죠.
3. 잠깐, 근데 무엇이 문화재인데?
지금까지 문화재가 왜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정리해보았는데요(잠깐 옆길로 새긴했었지만), 무엇이 문화재이고 무엇을 보호해야하는지는 이와 별개로 골치아프면서도 중요한 고민거리입니다.
옛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게해주는 소중한 유물들이 문화재라고 하면 문화재가 아닌게 없거든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터전에 그대로 살고 있기때문에 주변에 널린게 조상의 흔적일수 밖에 없어요. 이 모든걸 문화재로 지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그렇다면 어떤것을 문화재로 지정하는걸까요? 핵심적인 질문이지만 여기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나라에서 이거 문화재로 지정했다니깐 뭔가 중요한건가보다!하고 지나가는게 일반적인 경우죠. 다음은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귀중하다고 여겨지는 국보의 지정 기준입니다.
첫째, 보물급 문화재 중에서 제작연대가 오래된 것.
둘째,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
셋째, 제작의 의장이나 기술이 뛰어난 것.
넷째, 형태·품질·용도가 특이한 것.
다섯째, 역사적 인물과 관계가 깊거나 그가 만든 것.
보다시피 기준이 굉장히 주관적입니다. 오래되었다는건 몇 년 이상을 말하는것인지, 대표한다는건 뭔지, 뛰어나다는건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건지 등등... 이런것은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하게 됩니다. 심의과정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히 다루기엔 글의 수준을 넘어가므로 생략하고, 문화재 지정 기준이 사회의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문화재로 인식되는 물건이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고,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문화재가 절대불변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재를 볼때는 그 문화재가 과거에는 어떤 가치를 지녔고, 그것이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재는 문화재이므로 소중하고 보호해야한다는 논리에서 멈춰있지 말고, 이 문화재는 이러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소중하고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로 나아가야한다는 말입니다.)
문화재가 절대불변한다는 잘못된 관념에서 비롯되는 오류는 문화재 복원과 관련한 논란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4. 문화재 복원, 무슨 버전으로 할껀데?
문화재 복원이라고 하면 '유물을 원래 있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간략하게 보면 복원이라는 의미가 원래 그뜻이니 그게 맞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치 않죠. '원래 있던 모습'이 무엇인가에서부터 논쟁이 시작되는겁니다.
모두가 잘아는 경복궁입니다. 잠깐 퀴즈를 내볼까요? 지금 우리가 볼수 있는 경복궁은 경복궁의 원래 모습일까요? 경복궁의 원래 모습은 어느 시기의 것인가요?
경복궁은 14세기에 창건되어 임진왜란때 불탔다가, 대원군 때 중건하였다가 또 일부 불타고,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 건물이 들어섰다가 해방 이후 다시 물러서는 등 60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경복궁 건물 전체가 갑자기 알수없는 사건으로 다 사라져버려서 복원을 해야할 일이 생겼다면 어느 버전의 경복궁을 '원래 모습'으로 설정하고 복원해야하는걸까요?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문화재는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져오는것이 아니라, 그 세월속에 모습을 수없이 바꿔가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즉 문화재는 만들어질때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의 기억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정 시점이 문화재의 원래 모습이라고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복원하게 되면, 그 시점의 기억만을 선택해서 후손들에게 남겨주겠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문화재 복원 사업 역시 복원하는 시기의 사회를 반영할수 밖에 없습니다. 문화재가 현대 사회에 동떨어진 과거의 고정불변하는 물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발전해나가는 것일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겠네요.
처음 만들어졌을때의 그 모습 그대로 복원하자는 주장은 따라서 굉장히 편협한 생각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버전으로 복원하는게 옳냐는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네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부나 일부 학자에 의해 어떻게 복원할지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문화재 복원에 대해 논의할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문화재에 담긴 각 순간순간의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보고, 각자 평가를 내리며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고민해보는 거죠. 그럴때 문화재를 어떻게 복원하는것이 좋겠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생길수 있지 않을까요?
(구상은 이상적이지만 역시나 현실화는 어려운...!)
5. 그래서 하고싶은 말은
문화재는 소중하다, 문화재를 지켜야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정작 문화재가 왜 소중한지는 말하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의 바탕에는 문화재를 절대적으로 좋은것, 지켜야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애국, 애족과 같은 맹목적인 신념을 던져버리고, 문화재 역시 절대불변의 가치를 지닌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따라 가치가 변할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문화재가 왜 소중한지, 왜 보호해야하는지에 대한 바람직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끗.
같이 읽어보면 좋은글(이면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숭례문 복원: 문제는 저질재료도 장인의 실력부족도 아니다.(http://ppss.kr/archives/16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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