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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역사 속의 미생물] 과제:스베르들로프스크 탄저 유출사건

수업노트/인간의삶과역사속의미생물

by ∫2tdt=t²+c 2013. 1. 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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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과제였는데,

뭔가 식상한거 말고 특별한거 하고 싶어서 찾아다니다가 안 식상한 주제를 찾ㅋ음ㅋ.

하지만 이젠 이것도 식상해지겠지?


스베르들로프스크 탄저 유출 사건은 1979년 4월 2일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1450km쯤 떨어진 스베르들로프스크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에서 탄져균이 유출되어 대략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정확한 피해자는 파악되지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은 ‘도축업자들이 판 오염된 고기를 사람들이 섭취하여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해명하고 이 사건을 덮었지만 그 당시 스베르들로프스크의 공산당 서기였던 보리스 옐친의 도움으로 이 사건은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스베르들로프스크는 소련의 군수산업 복합단지의 중심이었다. 이 곳에서는 탱크와 핵 미사일을 비롯한 수많은 무기들을 생산했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의 731부대에서 세균전에 대한 문서가 밝혀지자, 연방은 이를 이용하여 생화학 무기 단지를 스베르들로프스크에 건설하고 탄저균을 배양하기 시작했다. 스베르들로프스크 근처의 제 19 군사 단지에서 생산된 탄저의 균주(strain)는 소련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배양된 탄저균은 말린 뒤에 고운 입자로 만들어 에어로졸(aerosol)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 공장의 배출 파이프에 달려 있는 커다란 필터만이 탄저균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벽이었는데, 1979년 3월 마지막 금요일에 기계를 잠신 정지시키고 말리는 동안에 한 기술자가 그 필터를 청소하기 위해 제거하였다. 그는 필터를 제거했다고 기록을 남겼지만, 그의 상관은 그 기록을 읽지 않고 다시 기계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필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뒤늦게 필터를 장착하였다. 무기 단지에서는 이 사건을 군 당국에게는 보고했지만, 그 지역 시민들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공장 맞은편에 있던 시멘트 공장의 인부들은 수 일내로 병을 앓기 시작했고, 그들 중 대다수는 1주일 이내에 사망했다. 전체 사망자는 1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KGB가 모든 병원 기록을 삭제하였기에 정확한 피해인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80년대에는 이 사건이 자연발생이었는지 테러였는지에 대한 토론과 조사가 있었다. 만약 테러였다면 이는 1972년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생화학 무기를 무장해제하기로 하였던 조항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제는 복잡했다. 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조사팀이 꾸려졌고, 숨겨져 있던 수많은 논문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Meselson 교수가 이끄는 조사팀은 1992년에 최종적으로 권한을 얻고 조사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모든 사망자들은 에어로졸을 통해 포자에 직접 노출되었다는 것과 사건이 공장 배기구의 필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 역시 밝혀졌다. 만약 그 당시 바람이 도시를 향해서 불고 있었다면 병원체가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까지도 퍼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1992년 러시아 총리 예고르 가이다르는 제 19 군사단지 해체를 지시했지만, 200여 명의 군사들이 아직도 그 단지를 순찰하고 있다. Shoham D.와 Wolfson Z.는 러시아의 생화학 무기 프로그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숨겨진 것이며 새로운 연구실과 장비들로 고도로 위험한 병원체들을 아직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 Meselson M, 1994, <The Sverdlovsk Anthrax Outbreak of 1979>, Science 266, (pp.120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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