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역사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시리즈물로 기획한 건 아닌데, 계속해서 이어서 써 나갈수있으면 좋겠네요. 저는 사학을 전공하면서도 관심은 공학 계열에 가 있는지라 수많은 이공계 사람들을 만나왔는데요, 그들이 인문학(그중에서도 특히 역사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자주 볼 수 있었죠. 많은 인문학도들이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해왔지만, 그 설명이 이공계열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와닿는 설명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름 중간지점에 끼어있는 사람으로서, 인문학도의 말을 이공계열 사람들의 말로 번역을 해주고 싶어졌어요. 이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목적입니다.
: 역사를 왜 공부하나요?
사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보다도 앞서서 던져야할 질문은 "역사를 왜 공부해야하는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대한 뻔한 답변으로는 다음과 같은게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신채호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안겨 준다
역사는 논리성을 학습하는데 유용하다
역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위안을 주기도 한다
역사는 국가의 흥망성쇠의 길을 알려주는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근대 동양에서는 국가 통치를 위해 역사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역사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를 잘 통치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서겠죠. 이 관점으로는 구조와 권력에 집중하는 정치/경제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진 몰라도, 개인의 삶에 집중하는 문화사 등의 미시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설명할 수 없죠.
그럼 진짜로 역사를 왜 공부해야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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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역사를 수학으로 교체해도 될 것 같아요.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XX를 왜 공부해야하나요?"라는 질문은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되어있는 순수학문이라면 늘상 받는 질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밥 벌어먹고 사는데에는 수학이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구요, 나머지 순수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학문은 특별히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논리력과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서이듯, 역사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역시 논리력과 창의력을 기르기 위함이죠!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자연세계가 구성되고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이듯, 사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비슷하게 과거 인류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있었고,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순수학문을 공부하는데에는 굳이 이보다 더 거대하면서도 번지르르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이쯤에서 어쩌면 질문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수학/과학을 공부하는 목적 중에는 신기술을 발명해서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것도 있지 않나요? 역사학에는 그런 건 없는건가요?"
사실 이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신기술을 발명해서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순수학문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응용학문에서 다루는 일입니다. 수학과 과학이 순수학문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응용학문으로는 공학이 있겠죠. 하지만 둘이 아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과학을 연구하면서 얻어진 부산물이 응용학문의 양분이 되는것이기에, 수학/과학 공부가 신기술을 발명해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데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있겠죠.
마찬가지로 순수학문인 역사학도 그 자체로는 세상을 바꾸거나, 국익을 증진하는데에 쓰일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에서 얻어진 부산물이 정치/경제/사회학이나 문화의 양분이 됩니다. 그러니깐 기초학문이고 순수학문인것이겠죠.
굳이 정리하자면, 역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 인류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기 위해서"이고, 이를 통해서 논리성과 창의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사학을 공부하면서 얻어지는 부산물이 다양한 학문의 양분이 되기 때문이라는 부연설명을 붙여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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